한국 개신교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형성과 관계 (1)
By John So

이 글은 ‘LID 2023 리더십저널’에 실린 글로 4편으로 나눠 게재합니다.
들어가며
한국 개신교회는 교단별로 각각의 특징을 찾는 것보다는 공통점을 찾는 것이 더 쉬운 것 같다. 그 공통점은 소위 “보수주의”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교단, 교파에 가더라도 마치 모교회에 온 편안함, 예배의 설교와 순서, 목회에 교단별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개신교회의 공통된 특징을 “진보”나 “보수”라는 상대적 개념보다는 이 모두를 포함하고 포괄하는 “복음주의”로 이해할 수도 있다. 흔히 “복음주의”는 “보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적절치 않다. 한국 개신교 안에 상대적 개념으로 인식하는 “진보주의”도 “복음주의”를 표방하며 활동하고 있으며 종교 개혁 전통의 개신교 복음이 정의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류대영 교수가 지적했듯이 “보수”라는 것은 옛것을 지킨다는 정의로 그 대게의 성향을 살펴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또한 “진보”나 “보수”는 지극히 상대적이기 때문에 나는 “보수주의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그보다 더욱 강한 “보수주의자” 앞에서는 “진보”나 “자유주의”자로 취급받기 쉽다. 따라서 여기서는 “진보”나 “보수”라는 개념 자체를 가지고 말하는 것보다는 한국이라는 제한된 지역 가운데 개신교의 복음이 전해 내려온 이후부터 이들의 성향이 형성되었던 상대적인 모습과 그 배경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한국 교회 분열의 여러 요인 가운데 “보수”와 “진보”가 신학적으로 보이는 분열의 원인도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미국 개신교 선교사의 선교 사상 – 청교도주의
먼저 한국의 개신교 형성의 근원을 살펴봐야 하기에 내한 선교사들의 사상과 생애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들의 성향은 제2차 대각성 운동의 영향을 받은 이들로서 청교도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한국에 전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기 북감리교, 북장로교 선교사 구분 없이 이들은 신앙의 경건함, 정결함, 엄격함 등을 추구하였고, 그 신앙의 뿌리를 한국에 잘 정착시키고 유지하려고 했다. 또한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은 한국에 가톨릭 선교사와 자신들을 철저히 구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했다.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의 설교를 보면 ‘우리 개신교가 대항해야 할 것은 세속주의, 부도덕성, 로마 가톨릭과 대항해야 함’을 주장했다. 당시 내한 선교사들의 모습에는 반가톨릭 성향이 강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 개혁 전통의 기준, 청교도주의 사상이 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성서무오설, 전천년설, 금주·금연, 주일성수의 강조를 통해 이를 가르치고 그대로 답습하도록 노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선교사와 교단을 가르지 않고 나타난다. 1919년에 마펫Samuel A. Moffett이 했던 설교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40년 전에 우리가 전한 복음을 그대로 전파하라... 새 복음에는 대단히 조심하시오... 저주를 받을 것이오. 형제여! 죠션 형제여!
위 설교는 당시 개신교 선교사들이 얼마나 그들이 가지고 온 청교도적인 신앙을 한국인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이어갈 것을 고심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초기 개신교 선교사의 바람대로 한국 개신교인은 이를 그대로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현지 한국인이 사경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성서를 읽고 공부하기에 부지런했던 이들의 모습은 감리교, 장로교, 타 교단 할 것 없이 있던 상황이었다. 장로교 길선주의 삶을 증언한 김인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생(길선주)의 성경 읽기는 굉장히 부지런했다. 구약 전서 통독이 30번이고 그중 창세기에서 에스더까지는 540회 이상을 통독했고 신약 전서는 100회 이상 통독하였고, 그중 요한1서를 500독 통독했고 묵시록은 1만 200독에 달했다. 선생보다 성경을 더 읽는 이는 적을 것이다. 묵시록을 만독 이상 통독한 분은 선생이 유일하며 이 능력은 성경 읽기를 통해서 얻었다.
이러한 증언은 길선주뿐만 아니라 시각 장애인이었던 감리교 전도사 백사겸도 성경 전체를 외우다시피 했다는 기록 등, 이와 유사한 증언들은 많은 사례가 있다. 사경회, 이러한 형태의 성경 읽기, 암송 등은 한국인들의 신앙에 근본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한국의 신앙에 청교도주의적인 사상이 강하게 반영되었음은 이외에도 한국인들의 신앙생활에도 드러난다. 주일을 지키는 주일성수 운동은 교회 공동체에서 중요한 신앙 기준의 지표로서 ‘주일에 세속적인 일은 물론 생업인 농사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 여행 금지’도 해당한다. 또한 금주, 금연 운동도 대표적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이 운동은 단순히 술과 담배가 나쁘다는 인식이 아니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 몸이 망가지고, 정신도 피폐해지고, 영혼을 갉아먹어 자기 몸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을 위하여 일전 한 푼 쓰지 않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금주와 금연을 강조하는 이유는 나, 가정, 국가라는 차원에서 그 정당성을 부여했다. 기독신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어 금주, 금연이 애국이라는 차원에서 강화해 나갔다.
우리나라 정부가 운영에 필요한 총예산이 15억만 원인데 우리가 소비하는 술값은 9천만 동포를 보호하기 위하여 쓰는 경비보다 2배가 더하니 동포 동포여 깊이 생각하라
이렇게 청교도주의는 한국 개신교인의 신앙과 삶에 서서히 자리 잡아갔고 한국 개신교 신앙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청교도주의 신앙은 한국의 정세에 따라 그 기능을 달리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개신교의 이러한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이 되었고 변화되었는지 다음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한국 개신교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형성과 관계 (2)
소요한 교수 Ph.D
감리교신학대학교 한국교회사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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